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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호]자수장 (刺繡匠) | 중요 무형 문화제

문성식 2012. 3. 30. 04:37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80호
명 칭 자수장 (刺繡匠)
분 류 공예기술
지정일 1984.10.15
소재지 전국



※ 본문설명

자수(刺繡)는 여러 색깔의 실을 바늘에 꿰어 바탕천에 무늬를 수놓아 나타내는 조형활동이다. 자수의 유래는 직조기술의 발달과 함께 한 것으로 여겨지나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부터 확인되며, 고려시대에는 일반백성의 의복에까지 자수장식이 성행할 정도로 사치가 심해 여러 번 금지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궁수(宮繡:궁중에서 수방나인에 의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수)와 민수(民繡:민간에서 일반적으로 만들어진 수)로 크게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을 보이면서 발전하였다.

자수의 재료로는 바늘과 바탕천, 평사(平絲)·합사(合絲)·연사(撚絲)의 색실과 틀 등이 있다. 주요기법에는 돗자리의 표면처럼 촘촘하게 엮는 자릿수, 땀새가 장단으로 교차되게 수놓는 자련수(刺練繡), 수면을 수평·수직·경사 방향으로 메워 가는 평수(平繡), 선을 조성하는 이음수, 수가 놓여진 윗부분에 군데군데 길게 고정시켜 수면이 흩어지지 않게 하는 징검수, 각종 꽃의 술이나 석류 등 작은 씨앗을 표현할 때 쓰이는 매듭수, 사슬고리 모양의 사슬수가 있다. 제작과정을 보면 바탕천을 틀에 고정시키고 밑그림을 그린다. 밑그림에 맞춰 수를 놓고 수가 끝나면 수틀을 뒤집어 먼지를 턴다. 수놓은 뒷면에 가볍게 풀을 칠하여 실밥이 흩어지지 않게 한 후 그늘에서 말린 다음 수틀에서 뗀다.

자수는 단순히 직물의 표면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각 민족의 생활환경, 풍습, 신앙 등에 따라 독자적 양식을 이루면서 발전하여 왔다. 따라서 자수장은 전통공예기술로서 가치가 크며 기능보유자로 한상수, 최유현 씨가 인정되어 전승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 보충설명

원래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감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물은 없지만, 문헌에 이미 삼국시대부터 수가 옷감에 놓여져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고려로 내려오면서 불교가 성행하면서 공덕을 쌓기 위하여, 가사(袈裟)를 위시하여 수불 등 많은 수작품을 제작했다.

조선조의 유품은 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있고 또 그외에도 많이 볼 수가 있다. 특히 왕과 왕비의 대례복에는 수를 놓았으며, 신하의 예복에도 수를 놓았다. 또 왕 이하 신하에게는 계급표시로 흉배가 붙여져 있다. 그 색조화와 구성은 일품이 아닐 수 없다. 그외에도 생활용품으로 주머니, 안경집, 방석, 노리개, 바늘집,골무는 물론, 병풍수장까지 다양한 분야에 수가 놓여져 소박하며 아담한 생활문화에 활기를 주는 아름답고 화려한 요소가 되기도 했다.

수는 궁수(宮繡)와 민수(民繡)로 나눈다. 궁수는 수방나인(繡房內人)에 의해 놓여진 수를 말한다 나인생활 15년이 지나면 상궁이 되는데 수방나인 상궁은 평생동안 수를 놓아 숙련되어 정교하고 색감에 있어서도 고도의 세련미를 보여주고 있다. 민수란 민간에서 놓는 일반수를 말한다. 가정에서 부녀자들은 들어앉아서 바느질과 수를 익혀왔다. 그러므로 민수는 민간인의 순수한 생활감정과 정성이 담긴 것이었다. 이외에 남자손에 의하여 수놓아진 안주수(安州繡)가 있었다. 수 바탕에 심을 넣어 박력을 느끼게 했는데 대작을 많이 하여 궁중에 진상하기도 했다.

수법은 가장 기본으로 점수선수 매듭수가 있으며, 이를 응용하여 다양하게 수를 놓는 것이다. 수를 시작할 때는 매듭을 만들거나 또는 두세 땀을 뜨고 시작한다. 끝처리도 두세 땀 뒷땀을 뜨고 실을 위로 올려서 바짝 자른다. 그리고 먼지를 털어내고 안쪽의 수위에 묽게 탄 풀을 바르고 마르기 전에 뜨거운 김을 5cm 정도 높이에서 쏘인다. 우리나라의 부녀자들은 모두 수를 즐겨 놓았으며 수법을 면면히 전승하여 내려왔다. 수를 놓는 일은 하나의 수련이었다. 따라서 수는 수를 놓는 이의 마음의 여유가 깃들인 정서적인 것이다.

현재 자수장으로 한상수는 꾸준히 전통을 계승하는 데 힘쓰고 노력하고 있다.

자수장 한상수

1935. 3. 20. ~ 보유자 인정: 1984년 10월 15일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수를 놓는다.

금실 은실 청홍(靑紅)실
따라서 가면
가슴속 아우성은 절로 갈앉고

처음 보는 수풀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

남향 햇볕 속에
수를 놓고 앉으면

세사 번뇌(世事煩惱)
무궁한 사랑의 슬픔을
참아 내올 듯

머언
극락 정토(極樂淨土) 가는 길도
보일 성싶다.

- ‘자수(刺繡)’, 허영자 시인, [가슴엔 듯 눈엔 듯], 1966

화려한 색채와 입체적 질감이 주는 감동, 한국의 전통 자수

 

자수(刺繡)는 여러 색실로 바탕천에 무늬를 수놓아 나타내는 조형활동이다. 자수의 유래는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부터 확인되며 고려시대에는 일반백성의 의복에까지 자수장식을 할 정도로 성행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궁수(宮繡: 궁중에서 수방나인에 의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수)와 민수(民繡: 민간에서 일반적으로 만들어진 수)로 구분되어 각각 뚜렷한 특징을 보이면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의 자수는 삼국시대를 즈음하여 이미 육조(六朝)시대에 중국에서 발생한 수불(繡佛)과 수장(繡帳)·수번(繡幡)·수가사(繡袈裟)와 같은 불교자수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발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신라 진덕여왕 4년(650)에 손수 비단을 짜서 여기에 오언(五言) 태평송(太平頌)을 수놓아 당나라 고종에게 보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삼국사기], [잡지(雜誌)]에 보면 옷은 물론 가마나 말안장, 일상용품에 이르기까지 수가 장식되었고, 불교수도 상당히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의 일본의 고대 기록을 통해 볼 때 일찍이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자수를 전하여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서기(日本書記)]에는 340년경에 백제의 왕이 옷을 짓는 여공(女工) 진모진(眞毛津)을 일본으로 보냈는데 이 진모진이 일본 자수의 시조가 되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자수의 흔적은 1973년에 발굴된 경주 천마총 출토 유물 중 옷자락에 금사로 수놓은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그 후 고려 말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자수사계분경도(刺繡四季盆景圖)] 및 사찰에서 전하는 몇몇 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자수는 크게 생활자수와 불교자수로 대별된다. 생활자수는 일상용품에 수놓아 치레하는 것을 말하며 왕실과 귀족 계층의 전용물이 대다수였으며 시대의 변천에 따라 대중화된 이후에도 여성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조선시대 후기 선비 문화의 생활관은 절제와 검소를 규범으로 하였기 때문에 사대부의 옷차림이나 그 밖의 생필품에 자수와 같이 화려하거나 사치하는 것을 기피하였다. 불교 자수는 종교적인 정성과 최선의 공양을 뜻한다. 탱화를 비롯하여 불경 표지, 연(輦)의 수식(垂飾)·인로왕번(引路王幡)·사리장엄구·가사 등이 바로 그러한 뜻을 담고 있다. 한국의 옛 자수들은 색깔이 강하지 않으며, 세부 묘사에도 얽매이지 않고 필요에 따라 대담한 생략법을 구사하였다. 그것은 자수에만 국한되지 않는 한국 공예미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정교하다 하더라도 결코 근시안적인 시각이 아닌 한 걸음 물러나서 관조할 수 있는 윤곽이요, 부드러운 선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중국 자수나 일본 자수와는 또 다른 한국 자수가 갖는 특징이다.

우리나라 자수의 유형

 

옛 자수를 유형별로 볼 때 복식자수(服飾刺繡)·기용자수(器用刺繡)·종교자수(宗敎刺繡)·감상자수 등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복식자수
조선시대 복식은 왕실복식과 사대부의 복식, 서민복식, 그리고 종교복식과 의례복식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왕실용 복식에는 임금과 세자의 곤룡포와 이에 곁들인 용보, 황후와 태자비의 원삼과 적의에 곁들여 착용하는 용보, 활옷 등이 있다. 활옷은 상류사회에서 가례 때 여성이 입는 예복이었으나 후기로 가면서 일반 백성의 혼례복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주로 모란, 국화, 연꽃, 불로초 등의 꽃무늬와 봉황, 학과 같은 길조와 수(壽)를 원하는 글귀가 놓여 있다. 또한, 난봉보, 문무관, 대사헌의 흉배, 임금의 면복, 문무관의 조신들이 조복이나 제복을 착용할 때 허리 아래로 늘어뜨리려 패용하는 후수(後繡) 등이 있다. 그밖에 복식과 관련된 자수로서, 화관, 댕기, 수노리개 등 장신구를 비롯하여 돌옷으로 전복, 복건, 쾌자, 애기굴레, 버선 등이 있고 굴레, 조바위, 남바위, 꽃신, 수주머니 등이 있다.

2) 기용자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생활 기물 중 수가 놓여진 것을 상당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장롱을 비롯하여 함, 궤, 갑(匣), 탁(卓), 선(膳), 침구, 방석, 보료, 병풍, 방장(房帳), 합(盒) 등과 베겟모, 선초, 침통, 안경집이 있고, 수저집, 붓주머니, 부채주머니, 노리개주머니, 도장주머니, 보자기 그리고 연(輦), 여(輿), 헌(軒), 여(轝), 륜(輪)과 말안장 등의 차구(車具) 등이 있다.

3) 종교 및 신앙자수
고려시대 불교가 융성했던 만큼 불교자수가 성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현존하는 작품은 대각국사 의천의 가사(袈裟), 용문탁의(龍文卓衣) 등을 꼽을 수 있을 뿐이며, 그 밖에 조선시대의 것으로 가사, 불경의 표장(表裝), 수번(繡幡), 수불(繡佛), 연(輦)의 장엄물 등이다.

4) 감상자수
감상을 하기 위한 자수가 나타난 시기는 고려시대이다. 특히 조선후기 자수병풍이 많이 번성한 것은 그 시절에 발달한 민화와 관련이 깊다. 병풍의 바탕이 되는 밑그림에 따라 마치 회화와 같이 산수도·십장생도·화조도·조충도·신선도·백동자도·백수·백복전도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외에 농사짓는 풍경을 수놓은 경직수병(耕織繡屛)과 풀·꽃·벌레 등을 묘사한 초충수병(草蟲繡屛), 꽃과 새를 수놓은 화조수병(花鳥繡屛), 인간이 꿈꾸는 장생불사의 염원을 표현한 십장생수병(十長生繡屛)과 물속에 노니는 물고기의 생태를 묘사한 어락수병(魚樂繡屛), 만인송덕수병(萬人頌德繡屛)이라 하여 선인들의 서체나 집안어른의 글씨를 받아 수놓은 서예수병, 유교의 기본 덕목인 인(仁)·의(儀)·예(禮)·지(智)·효(孝)·충(忠)자를 수놓은 문자수병, 고사수병, 송학수병, 매화수병 등이 있다.

전통자수의 자존심을 지키며 삶을 수놓은 지 60여년, 자수장 한상수 선생

 

198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으로서 최초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은 한상수 선생은 제주도가 고향이다. 한국전쟁 중이던 16살 때 처음으로 자수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동네 칭찬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곧잘 수를 놓았던 선생이 본격적으로 수를 배운 것은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부산에서다. 제주도가 고향인 선생은 피난민들의 입을 통해 자수 연구가인 故 조정호(이화여대 가정과) 교수가 부산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바로 뭍으로 올라와 조정호 교수를 찾아가 수를 배우기 시작하여 자수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원래 솜씨가 좋으셨던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은 선생은 타고난 손재주를 보였고, 한번 수틀을 잡고 앉으면 낮과 밤이 바뀌는 것도 모를 정도의 집중력과 끊임없는 노력이 한데 어우러져 빠른 속도로 실력이 늘어갔다. 전통자수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고, 전통자수에 관련된 고증과 유품을 수집하고 연구했으며, 한국 전통 자수를 복원함과 동시에 외국에 한국 자수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한국 수예의 60여 가지 자수기법을 바로잡아 체계화하였으며, 우리나라의 가장 전통적인 자수 공예로 꼽히는 ‘안주수(安州繡)’기법을 전수받기도 하였다.

이후 오로지 전통자수를 알리고 후대에까지 이어야겠다는 생각에 선생은 1963년에 수림원자수연구소를 설립하고 이을 통해 수예 전문 인재를 양성하기 시작하여 1971년에는 정부 산하 노동청 공인을 받은 자수인력 양성기관으로 규모를 확장했다. 이외에도 우리 자수의 맥을 잇기 위해 전국의 자수 자료를 수집, [이조의 자수], [흉배_조선왕조의 수] 등의 서적을 발간하며 전통자수의 개념을 확립하는 한편, 수림원자수전시관(현 한상수자수박물관의 전신)을 통해 한국의 수 문화를 대중에 알리는데도 앞장섰다. 이러한 선생의 노력으로 1981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이후 1984년 자수 부문에서 최초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인정받게 된다.

2007년에는 고구려인과 백제인이 밑그림과 제작의 감독을 맡은 것으로 전해지는 일본의 국보로 평가되고 있는 [천수국수장]을 제자 수백 명과 함께 20여년에 걸친 작업 끝에 복원하여 우리의 화려했던 고대 문화를 재현하기도 하였다. 천수국수장은 아스카시대인 622년 사망한 성덕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태자비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일본에서 제작된 자수 작품으로, 고구려인 가서일과 백제인 양부 진구마가 총감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한다.

수를 놓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생은 우선 수를 놓은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 자수를 배우려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자수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찾아오는데 한 달 여 정도 수를 놓고 나면 어깨가 굳고 아파서 더는 못하겠다며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수를 놓으면 스트레스가 잘 풀린다고 이야기들을 하는데, 그에 대해 선생은 “수는 가장 차분하고 평온할 때, 단정하고 온화한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드려 한 땀 한 땀 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이수자이며 고대 방식사를 연구한 딸 김영란(건국대 겸임교수)를 포함하여 손녀들까지 선생의 뒤를 잇고 있으며, 지금까지 천여 명 남짓의 제자들을 가르치며 우리 전통 자수를 알리고 전수하기 위해 고령의 연세에도 한시도 쉬지 않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주요작품

 

당상관문관흉배, 40×40cm금사징금수로 수놓은 쌍학흉배로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품을 재현했다.

백수백복수, 46×180cm (8폭)수직 실크 바탕에 문자도를 수본으로 그려 명주실을 꼬아서 평수로 하여 색색의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오래 살고 복을 맘껏 비는 마음으로 색의 조화를 이룬 병풍은 한 가정에 하나쯤 있어 다양한 용도로 쓰이게 되는 작품이다.

제작과정

 

자수의 재료로는 바늘과 여러 가지 색실, 틀 등이 필요하다. 주요기법에는 돗자리의 표면처럼 촘촘하게 엮는 자릿수, 땀새가 장단으로 교차되게 수놓는 자련수(刺練繡), 수면을 수평·수직·경사 방향으로 메워 가는 평수(平繡), 선을 만드는 이음수, 수가 놓여진 윗부분에 군데군데 길게 고정시켜 수면이 흩어지지 않게 하는 징검수, 각종 꽃의 술이나 석류 등 작은 씨앗을 표현할 때 쓰이는 매듭수, 사술고리 모양의 사슬수 등이 있다. 제작과정을 보면 바탕천을 틀에 고정시키고 밑그림을 그린다. 밑그림에 맞춰 수를 놓고 수가 끝나면 수틀을 뒤집어 먼지를 턴다. 수놓은 뒷면에 가볍게 풀을 칠하여 흩어지지 않게 한 후 그늘에서 말린 다음 수틀에서 뗀다.

 

약력
  • 1935년                         출생
  • 1952년~1957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 공예부 3회 입선
  • 1964년                         서울시 가내수공예전 1등 수상
  • 1970년                         한국자수협회 이사
  • 1974년                         이조시대 자수 유물전
  • 1975년                         동아공예대전 동상 수상
  • 1978년                         인간문화재공예전 장려상 수상
  • 1979년                         인간문화재공예전 문공부장관상
  • 1981년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
  • 1982년                         서울미술제 공예부 심사위원
  • 198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기능보유자 인정
  • 1984년                         한상수 자수초대전(대만 국립역사박물관)
  • 1991년, 1994년              한중고금자수 교류전
  • 1998년                         한국전통공예전 심사위원
  • 1999년                         독일 뮌델하임 텍스타일 박물관 전시
  • 1999년                         일본 다카시마야 백화점 전시
  • 2001년                         대구섬유축제 자수기능대회 심사위원장
  • 2002년                         미국 뉴욕 워싱턴 문화원초대 한일 친선 자수 초대전
  • 2002년                         일본 교토 전통공예 전시
  • 2003년                         한상수 자수한평생 전
  • 2005년                         한상수 자수 박물관 개관 (종로 북촌 한옥 마을)
  • 2005년                         주한 미 한국 대사관 초대 국립 자카르타 박물관 전시
이치헌/한국문화재보호재단 (http://www.chf.or.kr/)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문화재보호법 제9조에 근거하여 우리 전통문화를 널리 보전, 선양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기관입니다.
공식블로그 http://blog.naver.com/fpcp2010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
발행2012.12.20

자수장 최유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무형문화재이야기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br>
Master Artisan of Embroidery skill Holder

1936. 2. 15. ~ | 보유자 인정: 1996년 12월 10일

나는 당신의 옷을 다 지어노앗슴니다.
심의도지코 도포도지고 자리옷도지엇슴니다.
지치아니한 것은 적은주머니에 수놋는것뿐임니다.
그주머니는 나의 손때가 만히무덧슴니다.
짓다가노아두고 짓다가노아두고한 까닭임니다.
다른사람들은 나의 바느질솜씨가 업는줄로 알지마는 그러한비밀은 나밧게는 아는사람이 업슴니다.
나는 마음이 압흐고쓰린때에 주머니에 수를노흐라면 나의마음은 수놋는 금실을 따라서 바늘구녕으로 드러가고 주머니속에서 맑은노래가 나와서 나의마음이됨니다.
그러고 아즉 이세상에는 그주머니에널만한 무슨보물이 업슴니다.
이적은주머니는 지키시려서 지치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코십허서 다지치안은것임니다.

- ‘수(繡)의 비밀’ 원문, 만해 한용운 저

실과 바늘로 그린 한 폭의 아름다움 전통 자수

자수(刺繡)는 미(美)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에 의해 생성된 것으로 가장 오래된 장식기구의 하나인 바늘과 실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조형과 문양 및 색채·질감 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공예 예술이다. 자수의 소재는 섬유뿐만 아니라 가죽·새털 등 다양하며, 자수의 기법은 자연계의 문양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여 풍부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우리나라 자수에 관하여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으로, 부여 사람들이 흰 옷을 즐겨 입었고, 사신(使臣)이 외국에 나갈 때에는 문양과 색채를 그려 넣거나 수놓은 화려한 옷을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자수품으로 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은 평양 석암리 일대 낙랑 분묘군에서 출토된 직물 조각들이다.

우리나라의 자수는 주로 의복과 장식품에 사용되었는데, 삼국시대에는 왕족이나 귀족뿐만 아니라 서민들도 형형색색의 수가 놓인 화려한 옷감과 의복을 사용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사실주의적 표현과 종교작품이 많이 만들어졌으며, 조선시대에는 특히 궁중의 여복(與服)제도에 따른 의장이나 의전용품 등에 자수로 문양과 색채를 나타냈으며, 문무관의 신분과 계급을 구별하기 위해 관복의 앞뒤에 각기 다른 문양의 흉배를 착용하는 제도가 제정됨으로써 자수의 수요는 더욱 증진되었다.

[경국대전]·[속대전]·[목민심서] 등에 의하면 민간의 고급 직물과 함께 자수 의장(衣裝)사용을 금지한 사실이 여러 차례 기술되는 것으로 볼 때 자수가 서민들에게도 널리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관(官)에서는 전문적으로 자수품을 제작하였는데 수놓는 전문 장인을 가리켜 화아장(花兒匠)이라고 하였다.

자수품의 용도와 종류

자수의 종류는 계층에 따라 궁중 자수 · 규방 자수 · 민간 자수로 구분하고 용도에 따라 의장 자수 · 실용 자수 · 종교 자수로 나눌 수 있다.

● 계층에 따른 종류
궁중자수: 왕족과 그 친족의 수요를 위하여 제작된 것으로 국가의 행사에서 필요한 자수품에서부터 개인용의 소품까지 모두 엄격한 규범에 맞추어 전문 화공(畵工)과 장인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규방자수: 양반 계층의 여성들이 관장하여 제작한 것으로 일상의 필요뿐 아니라 수양과 덕목을 함양하는 교양과목으로 취미를 곁들여 직접 자수를 놓기도 하였다.
민간자수: 서민들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기법에 구애 없이 수놓아 질박한 조화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 용도에 따른 종류
의장자수: 사람의 신체를 감싸고 손·발 등에 착용하는 의장에 수놓은 것으로 착용자의 신분 구별을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여기에는 왕실에서 종묘사직에 제사를 지낼 때 입는 의례복인 제복(祭服)과 활옷, 원삼과 같은 가례복, 댕기, 후수, 보와 흉배, 관모, 주머니, 노리개, 버선과 신발 등이 해당된다.
실용자수: 수저를 담아 보관하는 수저집, 붓을 담아 보관하는 필낭, 부채와 부채집, 열쇠꾸러미, 골무와 바늘꽂이와 같은 침선용구, 보자기, 그리고 보료, 베갯모, 방석과 같은 침구류와 장롱이나 함에 놓은 수장식, 장막으로 늘어뜨리는 것 중 수놓아 장식한 것을 총칭하는 수장이나 자수병풍 등이 해당된다.
종교자수: 종교와 신앙에 바쳐진 자수품은 제작 속성상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되는데 현존하는 종교자수는 대부분 불교의 기물이나 의식에 사용하는 것 등이다. 여러 부처와 보살을 수놓은 수불(繡佛), 부처와 보살의 위덕을 나타내는 상징인 수번(繡幡) 등이다.

한 땀 한 땀 인생에 수를 놓아온 자수장 최유현 선생

자수장 최유현 선생은 1936년 전남 목포에서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아 무엇이든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선생은 15세 때부터 어머니에게 자수를 배웠다. 당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수를 놓았는데 가장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또한 자수였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수예시간에 손재주가 없어 과제물을 제대로 제출하지 못하는 친구의 것까지 대신 놓아줄 정도로 자수를 좋아했으며 또한 두각을 나타냈다. 수예선생님과 같이 작품을 하고 수놓는 것이 재밌고 칭찬받는 것이 좋아 수를 놓는데 빠져들었다.

이후 권수산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 수예에 소질이 있는 학생에서 본격적인 자수인생으로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한국전쟁 직후 서울에서 목포로 피난을 왔던 권수산 선생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자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권수산 선생은 조선미술학원 수예과를 졸업하고 목포로 피난와서 목포 가정여숙을 설립하여 교육에 힘썼던 분으로 최유현 선생은 17살 때 이 학교에 입학하여 권수산 선생에게 자수를 배운 한편, 본교 강사로 재직하는 등 5년간 권수산 선생 문하에서 지냈다.

이후 부산 동아대학교에 가정학과를 만든 뒤 학과장으로 부임을 받은 권수산 선생을 따라 부산으로 와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권수산 선생의 집안이 좌익운동에 연루되어 집안이 풍비박산 되고 서구나 일본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선생과의 의견차이로 인해 스승과 제자 간에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최유현 선생은 교직생활을 하게 되면서 스승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방학 중이나 주말을 통해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국전에서 두 번 입상을 하였으나 전문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기 위해 10년간의 교직생활을 접고 자수학원을 설립하게 된다. 학원을 설립한 1960년대에는 수를 배우려는 사람이 많아 학원에는 많은 수강생들로 북적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를 수로 놓았던 게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고, 방한한 독일대통령에게 증정한 선물 중에도 선생의 작품이 포함되었다. 현재는 취미로 배우려는 사람들보다는 전문인이 되려고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공방에서 가르치고 있다.

최유현 선생은 30대까지는 베갯모, 사진틀, 방석 같은 생활 소품을 많이 만들었는데 우리나라의 고화, 도자기 같은 문화재를 밑그림으로 수놓기를 시도했다. 그에 대한 반응이 좋아 이후에는 민화에 몰두하여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물을 접하고 수집하게 되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고 불화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40대부터는 불화 대작을 수놓기 시작하였다. 팔상도, 지장보살, 만다라, 아미타불, 팔신장, 십이지 등을 작품으로 완성했다. 이러한 대작들은 보통 2~3년, 많게는 8년에 걸쳐 완성된다고 한다. 특히 불교자수는 자수기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정성과 혼이 실려야 하기 때문에 자수기술과 불교신앙의 합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예천 용문사에 있는 만다라를 밑그림으로 자수 작품을 만들어 1988년 제13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유현 선생은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현재 부산대 한국전통복식연구소 부설 공방인 중수원(中繡院)을 운영하며 제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주요 작품

장생초목도 / 88×138cm영생(永生)의 상징인 신선들이 먹는다는 영생의 열매인 천도복숭아와 불로초를 자련수와 우련수 기법으로 얇고 곱게 수를 놓아 마치 채색화와 같이 표현했다.

산신도 / 187×178cm조선후기부터 토속신앙 형태로 나타난 산신을 사찰에서 수용하여 정각을 조성하고 예배의 대상으로 모셔 온 산신탱화를 밑그림으로 전통기법으로 수놓은 작품이다.

제작과정

자수에 사용되는 도구는 바늘, 실, 바탕천, 수틀 등이다. 수를 놓을 때는 먼저 바탕천을 수틀에 고정시킨 후 밑그림을 깨끗하게 그린 다음 겹수의 경우 심을 넣을 준비를 하고 수를 놓는다. 수가 끝나면 수틀을 뒤집어 놓고 막대로 가볍게 쳐서 먼지를 턴다. 수놓은 뒷면에 가볍게 풀칠을 해 실밥이 흩어지지 않도록 한 뒤 그늘에서 말린 다음 수틀에서 떼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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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칠한 말이대에 수놓을 천을 붙인다.

수실을 염색한다.

자수의 기법

▪ 점수: 아주 작은 점으로 표현되는 기법으로 밑그림을 전부 메우거나 윤곽선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 이음수: 가는 선을 표시하는데 많이 쓰여지는 수법이며 가는 나뭇가지 윤곽만을 수놓아 표시하는데 사용한다.
▪ 평수: 실을 간격 없이 겹치지 않게 반듯하게 수놓아 나가는 수법이다. 바늘땀의 방향이 가로(수평), 세로(수직), 사선으로 가름수로 수를 놓는다.
▪ 가름수: 작은 잎을 수놓거나 단풍잎처럼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잎을 수놓는 수법이다.
▪ 푼사수: 평수와 같은 것이나 푼사를 꼬지 않고 하는 것이 다르다.
▪ 징금수: 서양 자수의 코칭 스티치와 같은 수법으로 노끈, 굵은실, 금사, 은사 같은 다른 가는 실로 징그어 주는 기법이다.
▪ 자련수: 평수와 같이 전면을 다 메꾸어 가는 방식으로 바늘땀을 이어 1단계, 2단계로 그 모양을 크기에 따라 몇 단으로든지 나눠서 메꾸어 나가는 수법이다.
▪ 자릿수: 돗자리의 겉모양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넓은 면을 메꿀 때에 주로 사용한다.
▪ 속수: 겉수의 입체감을 나타내기 위해 양감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 관수: 일정하게 간격을 띄우고 수평으로 수놓는 기법으로 대체로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 엇겨놓기수: 양지관수로 밑수를 수놓은 다음 밑수의 색과 유사한 색으로 실과 실 사이를 어슷하게 건너주는 기법으로 꽃과 새의 꼬리에 응용되는 수이다.
▪ 새털수: 동물이나 새의 부드러운 깃털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 무늬목수: 한국 자수의 독특한 기법으로 결의 방향을 일정하게 규칙적으로 바꾸어 가며 무늬를 만드는 기법이다.
▪ 마엽수: 삼나무 잎모양처럼 엮어나간 연속무늬의 기법이다.
▪ 난십자수: 실을 사선으로 교차해서 수놓을 면을 메꾸어 나가는 수법이다.
▪ 입십자수: 같은 바늘땀의 길이 셋으로 삼각형이 되게 해서 수놓아 간다. 어떤 면에서 보아도 삼각형이 되는 것이 특징이다.
▪ 건넴수: 바탕천의 짜여진 올을 따라 한 올 간격을 두고 우리나라 발 모양으로 옆으로 놓은 후 같은 색실을 가늘게 꼬아서 0.4cm정도의 간격으로 한줄한줄 맞바꾸어 징궈 움직이지 않게 한다.
▪ 송엽수: 소나무 잎을 수놓을때에 쓰는 기법이다.
▪ 별무늬수: 별모양처럼 표현하는 기법으로 수놓는 땀이 짧고 조직적이어서 의상수에 적당하다. 특히 조선시대 의상에 많이 사용되었다.
▪ 칠보무늬수: 주로 금은사를 사용하며 평사수로 밑수한 위에 징금수하여 규칙적이고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드는 수법이다.
▪ 거북무늬수: 기하학적 형태가 거북등이나 다이아몬드를 상징하듯이 무늬를 놓을 때 사용하는 수이다.
▪ 매듭수: 천에 매듭을 만들어 수놓아 나가는 수법이다.
▪ 단추코수: 단추코를 하는 것과 같은 수법이다. 시작과 끝을 삼각매듭으로 한다.
▪ 양면수: 주로 손수건, 상보 등에 응용된다.
▪ 우련수: 한 문양의 면 안에서 여러 색상의 실을 바꿔 놓을 때 한 가닥 간격을 건너 세 가닥을 놓고 두 가닥 간격을 건너 두 가닥, 세 가닥 간격을 건너 한 가닥 놓는다.
▪ 첩수: 수놓은 천이나 또는 다른 재질을 따로 고정시키도록 이어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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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수 기법

가름수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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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털수 기법

송엽수 기법

약력
  • 1936년                         출생
  • 1988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
  • 1989년                         성지상 문화교육상
  • 1990년                         부산시 문화상 수상
  • 1991년                         부산시 문화예술진흥위원
  •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기능보유자 인정
  • 2006년                         부산대학교 객원교수
이치헌/한국문화재보호재단 (http://www.chf.or.kr/)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문화재보호법 제9조에 근거하여 우리 전통문화를 널리 보전, 선양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기관입니다.
공식블로그 http://blog.naver.com/fpcp2010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
발행2013.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