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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호]매듭장(매듭匠) | 중요 무형 문화제

문성식 2012. 3. 27.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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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22호
명 칭 매듭장(매듭匠)
분 류 공예기술
지정일 1968.12.21
소재지 서울전역



※ 본문설명

매듭장이란 끈목(多繒)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종류의 매듭을 짓고, 술을 만드는 기술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끈목은 여러 가닥의 실을 합해서 3가닥 이상의 끈을 짜는 것을 말하는데, 그 종류에는 둘레가 둥근 끈으로 노리개나 주머니끈에 주로 쓰이는 동다회와 넓고 납짝한 끈으로 허리띠에 자주 사용되는 광다회가 있다. 복식이나 의식도구 장식으로 사용되는 매듭은 격답·결자라고 한다.

매듭의 기원은 원시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 전승되어 오는 장식과 실용으로 삼았던 고유의 매듭 기법이나 염색법은 삼국시대에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소속의 매듭장이 있었다. 재료로는 명주실, 모시실, 닥나무실, 삼베실, 털실 등이 쓰인다. 끈의 색감, 굵기, 맺는 방법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며 지방에 따라 그 이름도 다르다. 매듭의 이름은 생쪽, 나비, 잠자리, 국화 등 우리가 쉽게 보고 사용하는 온갖 물건, 꽃, 곤충에서 따왔다. 끈이나 매듭의 하단에 다는 것을 술이라 하는데 각종 악기, 교통용구, 불교 도구 등의 장식에 사용하였다. 술 또한 쓰임새에 따라 딸기술, 봉술, 호패술, 선추 등 다양하다. 같은 종류일지라도 궁중과 지방에 따라 그 품격이 달랐다.

매듭은 생활전반에 폭넓게 이용되었으나 개화기 이후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매듭장의 대(代)가 끊어질 위기에 처해 김희진과 최은순 씨를 기능보유자로 인정하여 그 맥을 잇고 있다.

※ 보충설명

실이나 노끈의 일선상(一線上)에 세 점 이상의 교차점을 이루며 맺어진 한 형태를 매듭이라고 칭한다.

매듭은 용도가 다양하나 여기서는 우리나라에서 전승되어왔던 고유한 매듭을 원다회(員多繪)로 맺어 장식 또는 실용으로 삼았던 것을 말한다. 우리 매듭의 종류는 지방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고 또 같은 매듭이라도 호칭이 다른 경우가 있다.

그 종류를 지방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각 매듭의 종류에 일련번호를 달고 지방별로 구분하였다. 같은 번호가 같은 종류의 매듭이다)서울지방:1. 외벌도래매듭, 2. 도래매듭, 3. 납작이매듭, 4. 연봉매듭, 5. 잠자리매듭, 7. 나비매듭, 10. 동심결매듭, 11. 생쪽매듭, 12. 파리매듭, 13. 장구매듭, 14. 벌매듭, 16. 십일고매듭, 17. 석씨매듭, 18. 난간매듭, 19. 두벌감게매듭, 20. 세벌감게매듭, 21. 네벌감게매듭, 22. 다섯벌감게매듭, 23. 사색판(四色板)매듭, 바둑판매듭), 28. 전복(戰服)술매듭, 29. 망사매듭, 33. 가락지매듭. 궁중(宮中):2. 도래매듭, 3. 외귀매듭, 4. 단추매듭, 5. 매화매듭, 6. 잠자리매듭, 7. 나비매듭, 9. 안경매듭, 11. 생쪽매듭, 13. 이귀매듭, 14. 벌매듭, 15. 가지방석매듭, 18. 난간매듭, 19. 국화매듭, 20. 소차매듭, 21. 대차매듭, 30. 생동심결(生同心結), 31. 사동심결(死同心結), 33. 가락지. 대구지방:1. 외도괴매듭, 2. 도리매듭, 3. 귀도리매듭, 4. 단추매듭, 6. 온정자매듭, 7. 나비매듭(자 雌), 8. 나비매듭(웅 雄), 9. 안경매듭, 10. 동결매듭, 11. 정자(井字)매듭, 13. 삼정자(三井字)매듭, 19. 국화매듭, 20. 세벌강정매듭, 21. 네벌강정매듭, 22. 다섯벌강정매듭, 23. 거북매듭, 25. 매미매듭, 33. 가락지. 남원지방:2. 도리매듭, 3. 콩매듭, 4. 단추매듭, 6. 오발창매듭, 7. 나비매듭, 9. 안경매듭, 10. 동승결매듭, 11. 정자매듭, 13. 삼정자매듭, 16. 십일고매듭, 19. 국화매듭, 20. 방석매듭, 24. 가재눈매듭, 25. 게눈매듭, 26. 꼰디기매듭, 27. 날개매듭, 32. 혼백매듭, 33. 가락지. 위의 33종에 달하는 매듭들은 한올의 끈목을 반분하여 그 중심을 잡아 두 가닥으로 조리있게 얽어 놓고 끝이 날카롭지 않은 대송곳으로 질서있게 죄어서 제각기 쓰임새에 따라 오색영롱하게 엮어지게 된다.

매듭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는 도포끈허리띠 노리개와 같은 복식용이 있고, 실내장식용으로 발걸이 족자술(簇子술)방장 유소(流蘇)모기장 유소가 있으며 궁에서 쓰던 연(輦)소교(小轎) 자방산(紫方가)에도 쓰였다. 또 불교의식에서 연이나 인로왕기(引路王旗), 탱화(幀畵)의 장식으로 악기와 가마, 상여 등에도 매듭으로 된 장식인 유소(流蘇)는 꼭 갖추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전(前)보유자 정연수(程延壽)의 사망으로 현재는 그 미망인 최은순과 기능을 전수한 김희진이 정연수의 뒤를 이어 보유자로 인정되어 있다. 잃어버릴 뻔했던 전승공예가 국가의 지정보호조치로 가장 성공적으로 소생하고 발전한 보기가 매듭의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1917.11.23~2009.2.21 | 보유자 인정: 1976년 6월 30일

 

 

 

"인간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맺고 풀고 잇고 끊는 끈의 관계로 나타낸 것이 한국인의 인간관이다. 이러한 끈의 사상을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호로 나타낸 것이 바로 매듭이라는 수예품이다. 매듭의 형태는 코, 몸, 손의 세 가지 요소로 분절된다. '코'는 옷고름의 코처럼 부드러움과 여유를 나타낸다. 그러나 '몸'은 가닥을 결합시키고 묶음으로써 매듭의 강함을 나타낸다. '손'은 아무리 복잡하게 맺어진 것이라 해도 다시 풀 수 있는 열쇠를 간직하고 있다. 이 세 개의 구조 속에서 매듭은 아름다운 구조를 갖게 되고 인간이 만나 서로 인연을 맺기도 하고 원을 풀기도 하는 운동을 한다. 매듭은 끈의 문화로 상징되는 한국인의 마음을 시각화한 것이다."

                                                                                                                                  - 이어령 [한국인의 손, 한국인의 마음]

 


매듭, 인간 손의 섬세함을 보여주는 예술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방식의 매듭은 매 가닥을 엮고 맺는 섬세함을 보여주는 예술로서, 기계화로 인한 규격화, 대량화와는 극히 상반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매듭은 실을 염색하고 풀고 짜고, 엮으며 장인의 솜씨로 결실을 맺는 예술이며 끈목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매고 죄는 수법, 또는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형태를 말한다.

 

매듭이나 끈목의 기원은 여러 유물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구려 고분벽화 중 황해도 안악 3호분의 초상에서 나타난 방장을 묶은 끈과 술, 고려시대 [고려도경]의 자료를 통해 각종 의식에서 사용하였던 물품에 대한 기록들이 그것이다. 특히 고려불화에 나타나는 관, 영락, 목걸이, 허리띠에 있는 술 장식을 통해 그 맥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양식은 조선시대 탱화로 이어졌으며, 그 밖에도 각종 번(幡), 가마장식에 쓰인 유소, 복식에 쓰였던 것이 전해진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매듭을 전문으로 하는 장인을 두었는데 [대전회통] 공정편을 보면 매듭을 맺는 장인을 매집장(每緝匠)이라 기록하고 있으며, 공조(工曹) 경공장(京工匠)에 매듭장 2명, 상의원에 4명, 총 6명을 두어 제작하였다. 또한, 술도 매듭과 마찬가지로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제관(諸官)과 각사(各司)에 장(匠)을 두어 제작하게 하였다고 한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명주실을 꼬고 합사하고, 각색으로 염색해서 끈목을 만드는 다회장과 굵고 가느다란 끈목을 두 가닥으로 늘어 뜨려가며 각종 모양으로 매듭을 맺는 매듭장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매듭장으로 통칭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1950년 경)만 해도 서울 광희동하면 누구나 끈목과 매듭을 연상할 정도로 매듭장, 다회장들이 모여 살았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맥이 끊기다시피 했고 현재는 그조차도 당시의 기억으로만 가늠할 뿐이다.

 

 

남편 정연수 선생을 통해 배운 매듭

생활 문화 양식이 서구화되면서 매듭 또한 점차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에 국가에서는 1968년 12월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을 지정하였고, 광희동에 거주하는 정연수 선생을 기능보유자로 인정하였다. 1974년 정연수 선생이 타계한 2년 후 아내였던 최은순 선생이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최은순 선생은 1917년 서울 아현동에서 출생하여 어려서 부모를 따라 인천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다. 21세 때 서울 신당동에 사는 서른네 살의 매듭장 정연수 선생과 결혼하였다. 시댁은 원래 매듭장들이 많이 사는 광희동에서 4대째 살아왔으나 세습적인 매듭 장인의 집안은 아니었다고 한다. 최은순 선생이 시집올 당시 정연수 선생은 광희동의 옆 동네인 신당동에 살았는데, 신당동에서 매듭 일을 하는 집은 정연수 선생 댁뿐이었다고 한다. 남편으로부터 생업을 위해 매듭을 배우게 된 최은순 선생은 1960년대 말까지는 주로 유소와 술을 많이 제작하였고, 1974년 정연수 선행이 타계한 이후부터는 노리개 종류의 매듭을 주로 하였다.

 

197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기능 보유자로 인정되어 정연수 선생의 뒤를 이었다. 2009년 2월 노환으로 별세하기까지 전승공예대전, 한중일 삼국 국제매듭전,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작품전 등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여 전시출품하였다. 선생의 전통 매듭 기술은 그의 딸인 정봉섭 선생이 전수받아 2006년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외손녀인 박선경 선생이 대를 이어 계속 전수하고 있다.

 

 

밀화삼천주노리개, 최은순, 42cm

밀화삼천주노리개(Three Thousand Amber Pendant)
노리개는 궁중 여인이나 서민층 부녀자들이 각종 의식이나 경사스런 때에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찼던 패식구의 일종이다. 노리개는 신분이나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하여 격식을 차렸다. 노리개의 구조는 띠돈, 매듭, 주체, 유소[술]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주체는 각종 재료에 다양한 문양을 조각하였으며, 장식물이 무엇이냐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라졌다. 이 밀화삼천주노리개는 밀화를 세 개 잇달아 매달아 불교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나 장수를 상징하고 있다. 삼천주노리개는 조선시대에는 왕비만 찰 수 있던 노리개로서, 매듭장 최은순의 솜씨가 잘 발휘되었다.

방장걸이 유소, 최은순, 발 100X180cm, 유소 98cm

방장걸이 유소(Tassle for Blind)
방장은 전통 한옥의 방문 위에 쳐 한 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막을 때 사용하던 것이다. 방장걸이는 문으로 출입을 하고자 방장을 걷어 올릴 수 있도록 만드는 고리인데, 그 고리를 늘어뜨린 것이 유소이다. 이 유소는 굵게 짠 끈목을 길게 늘이고, 그 사이에 칠보로 만든 나비와 호응하여 나비매듭을 조형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간결하고 좌우대칭적이며 전체와 부분이 조화를 이루어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작업도구 및 제작과정

매듭을 만드는 과정은 1) 명주실 꼬아 합사하기, 2) 끈목 만들기, 3) 각종 모양으로 맺기, 4) 술 만들기로 나뉘며, 각 단계마다 각기 다른 도구가 필요하다.

 

먼저, 명주실을 합사하기 위해 자새(자애), 자구리[얼레], 상사걸이, 비톳이 사용된다.

 

자새 : 자애라고도 하며, 타래로 된 명주실을 자구리에 옮겨감을 때 명주실 타래를 걸쳐 놓고 쓰는 도구이다.
자구리 : 나무로 깎아 만든 것으로 명주실을 감아 놓는 도구이다. 얼레라고도 하며, 실을감아 보관할 때 통풍이 잘 된다.
상사걸이 : 끈목이나 술을 만들기 위해 실을 합사하거나 꼬는데 쓰는 도구이다. 실을 합사 하거나 꼬을 때 비톳을 걸어 놓고 쓴다.
비톳 : 비톳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실을 합사하거나 꼬을 때 상사거리에 걸쳐 놓고 쓰는 도구이다. 술실을 꼬을 때는 큰 비톳을 쓰며, 합사할 때에는 굵기에 따라서 비톳의 크기를 맞추어 쓴다. 다른 하나는 술을 비빌 때 쓰는 금속 비톳이 있다. 상사걸이 위에서 잘 꼬아진 바탕실을 술길에 맞추어 술틀에 감아 놓은 뒤에 비톳으 로 하나하나 비벼서 다시 꼬게 된다.

 

다음, 끈목을 짜기 위해서는 토작과 다회틀이 필요하다.

 

토작 : 끈목을 짤 때 실을 감아서 쓰는 실패와 같은 것으로, 끈틀 위에서 아래로 힘있게 늘어져야 손놀림을 할 수 있기에, 나무를 장구 모양으로 깎은 뒤 속에 일정한 무게의 납을 심으로 넣어 만들었다. 굵고 긴 끈을 짤 때에는 토작의 무게도 무겁고 커야 한다. 반대로 가는 끈을 짤 때는 작고 가벼워야 한다.
다회틀 : 다회틀에는 남원틀이나 궁중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남원틀은 두꺼운 나무 판 한가운데에 둥근 원추형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둥근 접시를 얹고 접시 한가운 데에는 바늘대를 꽂은 형태이다. 궁중에서 쓰던 다회틀은 밑받침으로 둥근 항아리를 놓고 그 위에 다회틀 대접을 놓고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술틀, 술판, 금속제 돗바늘, 실을 감는 실패, 술틀 기둥 구멍에 끼우는 사장못 등이 있어야 한다.

 

술틀 : 잘 다듬어진 직경 25㎝ 정도의 원형 나무판 가운데에 높이 60㎝ 정도의 나무기둥을 세웠고, 기둥에는 3㎝ 간격으로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에 사장못 2개를 원하는 술 길이에 맞춰 끼워서 쓴다
술판 : 양 끝에 못을 가지런히 박은 나무판으로 줄의 길이에 따라서 술판의 크기도 대, 중, 소로 나뉜다.
돗바늘 : 길이 9cm 정도의 금속바늘이다.
실패 : 심있는 끈틀에서 속심인 면사를 감는 실패와 술을 비비기 위해서 꼬은 바탕실을 감아 쓰는 실패가 있다.
사장못 : 술틀의 기둥 구멍에 끼우는 못이다.

 

 

 

 

약력

1917년 11월 23일
출생
1976년 6월 30일
제1회-제13회 전승공예대전 참가
1983~1991년
제1회-제9회 전통공예전수 교육회전 참가
1985.1987.1988년
한,중,일 삼국 국제매듭전 참가
1989~1990년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전 참가
1976~2008년
보유자 작품전 출품
2009년 2월 21일
별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문화재보호법 제9조에 근거하여 우리 전통문화를 널리 보전, 선양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기관입니다.
공식블로그(http://blog.naver.com/fpcp2010)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

매듭장 정봉섭

1938. 3. 9. ~ | 보유자 인정: 2006년 11월 16일


인간은 상호관계로 묶어지는 매듭이요, 거미줄이며, 그물이기에
인간관계만이 유일한 문제이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손끝에서 피어나는 끈의 예술, 매듭

 

끈목(多繪)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매고 죄는 수법, 또는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형태를 매듭이라 한다. 매듭은 명주실을 꼬고 합사(合絲)하고, 각색으로 염색해서 끈목을 친 다음, 그 굵고 가느다란 끈목을 두 가닥으로 늘어뜨려가며 각종 모양으로 맺은 것을 말한다. 혹은 술을 중심으로 꾸미기도 하는데 한복에 다는 노리개와 장신구로 늘어뜨리는 유소(流蘇)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매듭의 넓은 의미로는 일반적으로 엮고 맺고 짜는 일을 총칭한다. 그러나 매듭은 단순히 맺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매듭 속에 숨어있는 정신적인 미와 외형적인 미가 표현되어야 한다.

다회(多繪)라고 하는 것은 매듭에 사용되는 다양한 물질의 선(線)이 합사되어서 매듭의 재료가 되는 것으로 한자의 뜻을 풀이하면 많은 실이 모여서 그림을 이룬다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끈목’이라고 부르는데 그 모양에 따라 원다회(圓多繪)와 광다회(廣多繪)로 구별된다. 원다회는 둥근 끈목으로서 그 자체가 도포끈과 같은 끈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주로 매듭을 제작하는 끈으로 많이 쓰인다. 이에 반하여 광다회는 날줄과 씨줄로 납작하게 직조되는 것이어서 바로 끈으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끈목은 생사(生絲)를 정련하여 명주실을 염색하고 이를 꼬아 합사해서 짠 것으로 여러 가지 물형을 맺는데 그 맺는 모양에 따라 도래매듭, 귀도래매듭, 생쪽매듭, 안경매듭, 매화매듭, 국화매듭, 나비매듭, 가지방석매듭, 매미매듭, 잠자리매듭, 외귀매듭, 연봉매듭, 이귀매듭, 벌매듭, 난간매듭, 소차매듭, 대차매듭, 딸기매듭, 꼰디기매듭, 석씨매듭, 사색판매듭 등이 있다.

매듭의 유래는 이미 신석기 시대의 질그릇, 어망 등 유물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실을 꼬는 기구인 흙으로 빚어 만든 가락바퀴와 골각으로 된 바늘이 발굴되어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낙랑시대 왕우묘에서 광다회가 출토되었으며, 고구려 무용총 벽화의 주실에서도 끈목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매듭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 장인을 두었는데 대전회통 공전편을 보면 매듭을 하는 장인을 매집장(每緝匠)이라 기록하고 있다. 매듭장은 경공장에 속해 있었으며 공조 경공장에 매듭장 2명을 상의원에 4명 도합 6명을 두었다고 한다. 긴 세월 동안 전승되어 온 매듭은 고려시대에는 귀부인들의 사치품으로 사용되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그 용도가 다양해져 가마나, 연, 복식뿐만 아니라 실생활 전반에 널리 이용되었다.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방식의 매듭은 매 가닥을 엮고 맺는 섬세함을 보여주는 선(線)의 예술이다.

매듭의 종류와 용도

 

1) 노리개 : 조선시대 여성의 장신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형태와 재질, 용도와 계절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다. 홍, 남, 황의 삼원색을 기본으로 하고 분홍, 연두, 보라, 자주, 옥색 등 다채로운 색의 다회로 매듭을 맺고, 술을 늘어뜨린 노리개 세점을 한 벌로 하여 ‘노리개 삼작’ 이라 불렀다. 노리개에 쓰이는 매듭은 주로 도래, 생쪽, 매화, 국화, 삼정자, 병아리, 나비, 가지방석매듭 등이고, 색실과 금실로 만든 가락지를 끼우고 봉술, 딸기술, 낙지발술 등을 늘어뜨렸다. 노리개의 형태와 무늬에는 조선시대 여인들의 현세에 대한 의망과 기원을 뜻하는 것들이 많이 담겨 있다.
2) 각종 주머니 : 우리 옛 의상의 특징 중 하나는 주머니가 없다는 것인데, 실용과 미를 겸한 장신구로 주머니를 따로 만들어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몸에 지녔다. 형태, 장식, 용도별, 소재에 따라 귀주머니, 두루주머니, 약낭, 필낭, 수저집, 안경집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주머니의 종류만큼 매듭과 술의 종류도 다양해서 끈술, 딸기술, 봉술, 오발창매듭, 안경매듭, 잠자리매듭, 생쪽매듭, 국화매듭, 병아리매듭 등 다양한 형태의 매듭과 술을 볼 수 있다.
3) 도포끈 :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편복으로 애용한 도포에는 동다회 양 끝에 딸기술을 단 띠를 했고, 길다란 쾌자띠(도포끈)를 가슴에 들어 생동심결로 매고 두끝을 무릎 아래까지 늘어뜨려 멋을 냈다. 빛깔은 계급에 따라 구분되어 당상관은 다홍·분홍·자주색을, 선비는 초록색, 참봉이나 주사는 회색, 초시는 보라색을 사용했고 상주(喪主)는 어느 계층이든 간에 흰색을 둘렀다.
4) 호패술 : 남자의 바지 허리끈에 달았던 호패는 대부분 방망이술로 장식했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 호패의 재료와 새겨진 명문(銘文)이 달랐으며, 술이나 끈목의 색깔도 달랐다.
5) 선추술 : 부채의 고리에는 다회에 선추를 끼워 술을 늘어뜨렸다. 사용자의 신분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선추, 초혜집 등이 사용되었으며, 끈목의 색깔도 달리하였다.
6) 대자띠 : 평직으로 짠 넓은 띠 양 끝에 전복술 매듭을 여러 단 맺고 그 끝을 그대로 늘어뜨린 허리띠이다.
7) 실내장식용 : 발걸이, 방장걸이, 횃대, 족자, 편액, 붓걸이, 고비 등 실내용 기물에 매듭을 장식하여 무미한 실내 분위기를 아름답고 우아하게 꾸몄다.
8) 종교의식용 : 사찰에서 사용하던 연, 번, 불자 등에도 매듭 장식을 하여 장엄하였다. 특히 연(輦)에는 옥, 유리 구슬, 수향갑, 조각한 나무 등에 매듭과 술을 달아 연의 처마 밑에 사방으로 촘촘히 둘러 늘였으며, 네 모서리에는 석씨매듭을 넣은 대봉유소를 달아 길게 늘여 장엄하였다.
9) 악기장식용 : [세종실록]악기조에 의하면, 건고(建鼓), 방향(方響), 당필률(唐觱栗), 적(笛), 향필률(鄕觱栗), 대적(大笛), 장구채, 통소(洞簫), 해금(奚琴), 박(拍) 등에 유소를 장식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외에 철제은상감적, 죽간자, 황개, 라, 편종, 대금, 방향 등의 악기에도 유소를 늘어뜨려 장식했다.
10) 예복용 : 조선시대 관복 중에 경축일에 입었던 조복이나 종묘제사 때 입던 백관의 제복에 부착된 후수는 청색 실로 망수를 맺고 그 끝에 후수술을 달았으며, 금관에는 딸기술을 양편에 달았다. 왕비의 적의에도 뒷면의 대대에 후수를 달았고, 후수 끝에는 술이 달렸다. 그리고 임금이나 왕비 또는 고관들만이 패용했던 패옥에도 밑에 매듭으로 망수를 맺고 술을 늘였다.
11) 궁중용 기물과 복식 : 견여(肩輿)라 하는 순(輴)과 반우거(返虞車)에는 낙영(落纓)을 만들어 사방의 처마에 드리웠고 대여(大轝)에는 삼색의 저사(紵絲)를 사용하여 낙영을 만들어 서로 섞어서 사면에 드리운 처마의 안에 매달았다.
12) 민간 의예식용 : 민간에서 새색시가 시집갈 때와 사대부집 부녀자가 나들이할 때 타는 가마를 위시하여 마지막 저승길에 타고 가는 상여에 대봉유소, 소봉유소, 앙장유소 등의 매듭과 술을 장식하였다. 시신을 넣는 관은 백포(白布)로 매듭을 묶었다.

세대를 이어가며 100년을 이어온 전통매듭의 역사 정봉섭 선생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기능보유자인 정봉섭 선생은 초대 매듭장 보유자이자 부친인 고 정연수 선생(1968년 보유자 인정)과 모친인 최은순 선생(1976년 보유자 인정)으로부터 매듭일을 배웠으며, 맏딸인 박선경 선생(매듭장 전수교육조교)까지 4대째 전통매듭을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예전에는 매듭장 중에 남성 매듭장이 많았다고 한다. 가마, 연(輦), 기(旗), 상여 등을 장식하는 대형 유소는 팔힘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어서 여성들이 하기 힘이 드는 이유였다. 매듭이 직업이었던 아버지에게 시집온 어머니는 아버지를 도와 복식에 사용된 소형 노리개, 허리띠, 주머니끈 등 장식성을 띠고 있는 매듭을 주로 하였다. 선생은 가업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매듭장으로서 갖추어야 할 은근과 끈기까지 그대로 물려받았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가느다란 실 가닥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일이니만큼 어지간한 꼼꼼함이 아니고서는 버텨내기 힘든 일이 매듭을 만드는 일이다.


“매듭이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자잘하게 도울 일이 많아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아버지께서 작업하실 때 옆에서 심부름을 도맡아 했죠. 매듭 공예를 배워야겠다 작정하고 배운 건 아닙니다. 곁에서 심부름하며 작업하시는 것을 가까이에서 보고 눈으로 익히고 심심할 때 혼자 흉내 내곤 했죠. 그러다 보니 언젠가 제가 매듭을 엮고 있더라고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재능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선생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부모의 뒤를 이어 매듭장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어머니는 정봉섭 선생에게 유독 엄격했다고 한다.

매듭은 오색물감으로 명주실을 염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매듭을 맺어 대송곳으로 질서 있게 죄어서 쓰임새에 따라 오색영롱하게 엮어가는 작업이 이어진다. 노리개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열흘 이상이 걸린다. 노리개에 달린 한 가닥의 술을 만드는 데만도 수백 차례 이상 쉬지 않고 실을 꼬아야 완성된다. 매듭은 그야말로 온전히 인내와 공력으로 탄생되는 산물인 셈이다.


“며칠을 매달려 완성된 작품도 있고, 몇 달을 공을 들여 만들어내는 것도 있어요. 작품 하나하나 애틋하고 정이 가죠. 그런데 이런 전통공예가 사람들에게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아서 서운하고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해요. 요즘 사람들은 매듭에 대한 관심도 적은 편이고, 수요도 많지 않은 편이죠.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전통 매듭을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

매듭의 전 분야를 섭렵한 정봉섭 선생은 정교한 기량이 돋보이는 빼어난 솜씨로 정평이 나 있지만 한 번 매듭을 잡으면 몇 시간이고 꼬박 앉아서 집중하는 일을 수십 년을 하다 보니 인대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손가락뼈에 주사를 맞아가며 일을 하기도 하고 허리가 안 좋아져 수술을 받기도 했다.

3대를 이어온 매듭의 계보는 순리대로 그 흐름을 이어가 정봉섭 선생의 딸인 박선경 선생이 가업을 이어가면서 4대째 이어져 오고 있다. 박선경 선생 역시 20년 넘게 매듭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깐깐한 어머니 앞에서는 종종 혼이 나곤 한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매사에 완벽을 기해왔던 어머니였기에 박선경 선생 역시 불평 없이 어머니의 훈육을 달게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전통공예를 하면서 생활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과 타협하다 보면 애써서 지켜온 전통의 맥을 놓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업지요. 그게 제가 전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구요.”

정봉섭 선생은 기능면에서도 매우 정교하고 기량과 솜씨가 탁월할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노리개에서부터 의식용 장엄구인 유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고 있으며, 특히 봉술(술 머리에 금실을 감아 글자문양을 표현하는 기능)감는 기능을 복원하여 전통매듭의 원형복원과 보존, 전승에 힘써온 것을 높이 평가 받아 200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작품

대삼작노리개 _ 길이 49cm가례나 혼례의 대표적인 예물로서 산호가지, 옥나비, 밀화 등 부부금슬이나 복 등을 염원하는 패물을 달아 사용했다. 이 대삼작노리개는 명주실을 삼색으로 염색한 후 합사하여 8사로 끈목을 짜고 도래매듭을 시작으로 생쪽, 양생쪽, 가지방석 매듭을 엮어 노리개의 윗부분을 완성한 뒤 끈술형태의 낙지발술을 달아 완성했다.

방장유소 _ 120×170 / 98cm방장은 추위나 바람을 막기 위해 방문이나 벽에 두르는 휘장이다. 안에 심을 댄 붉은색 비단에 박쥐문양과 연꽃문양의 금박을 장식하여 실용성과 장식미를 더하였다. 방장유소는 자주색 동다회로 끈목을 짜서 도래, 병아리, 나비, 국화매듭과 딸기술로 장식하였다.

비취 향갑 노리개 _ 6×39cm, 산호 향갑 노리개 _ 7×39cm, 밀화 향갑 노리개 _ 7×42cm

박쥐수노리개_37cm                비취나비삼작노리개_35cm         산호삼작노리개_36cm

모시방장유소(대)_132.5x200cm

선추노리개_81cm

제작도구 및 제작과정

 

제작도구
끈목을 짜고 술을 맞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도구가 필요하다.
1) 자애 : 자새라고도 한다. 타래로 된 명주실을 자구리에 옮겨 감을 때 명주실 타래를 걸쳐놓고 쓰는 도구이다.
2) 자구리 : 나무로 깎아 만든 것으로 명주실을 감아 놓는 도구. 얼레라고도 한다. 실을 감아 보관할 때 통풍이 잘된다.
3) 상사거리 : 끈목이나 술을 만들기 위해 실을 합사하거나 꼬는데 쓰는 도구
4) 비톳 : 두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실을 합사하거나 꼬을 때 상사거리에 걸쳐 놓고 쓰는 도구와 술을 비빌 때 쓰는 것으로 금속 비톳이 있다.
5) 토짝 : 끈목을 짤 때 실을 감아서 쓰는 실패와 같은 것
이외에 다회틀, 술틀, 술판, 돗바늘, 나무실패, 사장못 등이 사용된다.

제작과정

 

1) 염색 : 매듭은 명주실을 염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끈목을 짜려면 명주실이 끈틀에 앉혀지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데 먼저 생사를 비눗물에 알맞게 삶아 깨끗이 헹구어 견교질을 빼낸 후 그늘에서 말린다. 이 과정을 ‘정련(精練)’ 또는 ‘숙(熟)한다’고 한다. 정련한 한 비단실을 염색하는데 천연 염료로 잇꽃, 지치, 쪽, 꼭두서니, 치자, 칡, 명아주, 소방목, 대추나무, 주목, 계장초, 금전화, 팥, 배나무 껍질 등 여러 식물의 꽃이나 뿌리, 잎 등이 쓰인다.
2) 다회치기 : 염색을 하여 잘 마른 비단실 타래를 자애에 걸고 옮겨 감는다. 이것을 ‘자애질 한다’ 또는 ‘해사한다’고 한다. 해사가 끝나면 합사(合絲)를 한다. 합사한 실끝을 비톳의 코에 단단히 걸어 매고 손바닥으로 대바늘을 비벼 실을 꼬게 된다. 용도에 따라 4사치기, 8사치기, 12사치기로 나뉜다.
3) 매듭 맺기 : 매듭을 맺으려면 우선 일정한 길이의 끈목을 반으로 접어서 중심을 잡고 두 가닥의 끈을 순서대로 엮고 다시 차례대로 끈의 결을 바로 잡으며 질서 있게 조인다. 어떻게 잘 조여 주느냐에 따라 매듭의 아름다움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듭 맺기에 있어서 조이는 과정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고(옷고름이나 끈 따위를 서로 잡아맬 때 매듭이 풀리지 않게 하기 위해 한 가닥을 고리 모양으로 잡아 뺀 것)를 반듯하게 살려 전체적인 균형을 잘 맞춘다.
4) 술 만들기 : 봉술, 딸기술, 방울술, 방망이술, 낙지발술 등 술의 종류에 따라 만드는 과정이 다르다.

1) 매듭 재료와 도구                 2) 술감기 가지만들기               3) 석씨매듭하기

4) 매듭하기                           5) 매듭하기                          6) 작업중인 정봉섭 선생

약력
  • 1938년               서울 출생, 父 정연수 선생과 母 최은순 선생으로부터 매듭 전수
  • 1977년               제2회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수상
  • 1971년~1988년    제1회~제13회 전승공예대전 입선
  • 1985년, 1987년    한중일 3국 국제매듭전 출품
  • 2004년               무형문화재초대전 <매듭장 최은순家 매듭으로 잇는 4대 이야기> 전시
  • 2005년               전통공예전 (워싱턴 한국문화원) 출품
  • 200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기능보유자 인정
  • 2009년               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 2009년               무형문화재 공개행사 ‘매듭장 정봉섭의 매듭장신구전’ 개최
  • 2010년               무형문화재 공개행사 ‘천공을 만나다’ 참여
이치헌/한국문화재보호재단 (http://www.chf.or.kr/)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문화재보호법 제9조에 근거하여 우리 전통문화를 널리 보전, 선양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기관입니다.
공식블로그 http://blog.naver.com/fpcp2010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
발행201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