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 3. 9. ~ | 보유자 인정: 2006년 11월 16일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인간은 상호관계로 묶어지는 매듭이요, 거미줄이며, 그물이기에
인간관계만이 유일한 문제이다.
손끝에서 피어나는 끈의 예술, 매듭
끈목(多繪)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매고 죄는 수법, 또는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형태를 매듭이라 한다. 매듭은 명주실을 꼬고 합사(合絲)하고, 각색으로 염색해서 끈목을 친 다음, 그 굵고 가느다란 끈목을 두 가닥으로 늘어뜨려가며 각종 모양으로 맺은 것을 말한다. 혹은 술을 중심으로 꾸미기도 하는데 한복에 다는 노리개와 장신구로 늘어뜨리는 유소(流蘇)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매듭의 넓은 의미로는 일반적으로 엮고 맺고 짜는 일을 총칭한다. 그러나 매듭은 단순히 맺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매듭 속에 숨어있는 정신적인 미와 외형적인 미가 표현되어야 한다.
다회(多繪)라고 하는 것은 매듭에 사용되는 다양한 물질의 선(線)이 합사되어서 매듭의 재료가 되는 것으로 한자의 뜻을 풀이하면 많은 실이 모여서 그림을 이룬다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끈목’이라고 부르는데 그 모양에 따라 원다회(圓多繪)와 광다회(廣多繪)로 구별된다. 원다회는 둥근 끈목으로서 그 자체가 도포끈과 같은 끈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주로 매듭을 제작하는 끈으로 많이 쓰인다. 이에 반하여 광다회는 날줄과 씨줄로 납작하게 직조되는 것이어서 바로 끈으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끈목은 생사(生絲)를 정련하여 명주실을 염색하고 이를 꼬아 합사해서 짠 것으로 여러 가지 물형을 맺는데 그 맺는 모양에 따라 도래매듭, 귀도래매듭, 생쪽매듭, 안경매듭, 매화매듭, 국화매듭, 나비매듭, 가지방석매듭, 매미매듭, 잠자리매듭, 외귀매듭, 연봉매듭, 이귀매듭, 벌매듭, 난간매듭, 소차매듭, 대차매듭, 딸기매듭, 꼰디기매듭, 석씨매듭, 사색판매듭 등이 있다.
매듭의 유래는 이미 신석기 시대의 질그릇, 어망 등 유물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실을 꼬는 기구인 흙으로 빚어 만든 가락바퀴와 골각으로 된 바늘이 발굴되어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낙랑시대 왕우묘에서 광다회가 출토되었으며, 고구려 무용총 벽화의 주실에서도 끈목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매듭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 장인을 두었는데 대전회통 공전편을 보면 매듭을 하는 장인을 매집장(每緝匠)이라 기록하고 있다. 매듭장은 경공장에 속해 있었으며 공조 경공장에 매듭장 2명을 상의원에 4명 도합 6명을 두었다고 한다. 긴 세월 동안 전승되어 온 매듭은 고려시대에는 귀부인들의 사치품으로 사용되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그 용도가 다양해져 가마나, 연, 복식뿐만 아니라 실생활 전반에 널리 이용되었다.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방식의 매듭은 매 가닥을 엮고 맺는 섬세함을 보여주는 선(線)의 예술이다.
매듭의 종류와 용도
1) 노리개 : 조선시대 여성의 장신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형태와 재질, 용도와 계절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다. 홍, 남, 황의 삼원색을 기본으로 하고 분홍, 연두, 보라, 자주, 옥색 등 다채로운 색의 다회로 매듭을 맺고, 술을 늘어뜨린 노리개 세점을 한 벌로 하여 ‘노리개 삼작’ 이라 불렀다. 노리개에 쓰이는 매듭은 주로 도래, 생쪽, 매화, 국화, 삼정자, 병아리, 나비, 가지방석매듭 등이고, 색실과 금실로 만든 가락지를 끼우고 봉술, 딸기술, 낙지발술 등을 늘어뜨렸다. 노리개의 형태와 무늬에는 조선시대 여인들의 현세에 대한 의망과 기원을 뜻하는 것들이 많이 담겨 있다.
2) 각종 주머니 : 우리 옛 의상의 특징 중 하나는 주머니가 없다는 것인데, 실용과 미를 겸한 장신구로 주머니를 따로 만들어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몸에 지녔다. 형태, 장식, 용도별, 소재에 따라 귀주머니, 두루주머니, 약낭, 필낭, 수저집, 안경집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주머니의 종류만큼 매듭과 술의 종류도 다양해서 끈술, 딸기술, 봉술, 오발창매듭, 안경매듭, 잠자리매듭, 생쪽매듭, 국화매듭, 병아리매듭 등 다양한 형태의 매듭과 술을 볼 수 있다.
3) 도포끈 :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편복으로 애용한 도포에는 동다회 양 끝에 딸기술을 단 띠를 했고, 길다란 쾌자띠(도포끈)를 가슴에 들어 생동심결로 매고 두끝을 무릎 아래까지 늘어뜨려 멋을 냈다. 빛깔은 계급에 따라 구분되어 당상관은 다홍·분홍·자주색을, 선비는 초록색, 참봉이나 주사는 회색, 초시는 보라색을 사용했고 상주(喪主)는 어느 계층이든 간에 흰색을 둘렀다.
4) 호패술 : 남자의 바지 허리끈에 달았던 호패는 대부분 방망이술로 장식했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 호패의 재료와 새겨진 명문(銘文)이 달랐으며, 술이나 끈목의 색깔도 달랐다.
5) 선추술 : 부채의 고리에는 다회에 선추를 끼워 술을 늘어뜨렸다. 사용자의 신분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선추, 초혜집 등이 사용되었으며, 끈목의 색깔도 달리하였다.
6) 대자띠 : 평직으로 짠 넓은 띠 양 끝에 전복술 매듭을 여러 단 맺고 그 끝을 그대로 늘어뜨린 허리띠이다.
7) 실내장식용 : 발걸이, 방장걸이, 횃대, 족자, 편액, 붓걸이, 고비 등 실내용 기물에 매듭을 장식하여 무미한 실내 분위기를 아름답고 우아하게 꾸몄다.
8) 종교의식용 : 사찰에서 사용하던 연, 번, 불자 등에도 매듭 장식을 하여 장엄하였다. 특히 연(輦)에는 옥, 유리 구슬, 수향갑, 조각한 나무 등에 매듭과 술을 달아 연의 처마 밑에 사방으로 촘촘히 둘러 늘였으며, 네 모서리에는 석씨매듭을 넣은 대봉유소를 달아 길게 늘여 장엄하였다.
9) 악기장식용 : [세종실록]악기조에 의하면, 건고(建鼓), 방향(方響), 당필률(唐觱栗), 적(笛), 향필률(鄕觱栗), 대적(大笛), 장구채, 통소(洞簫), 해금(奚琴), 박(拍) 등에 유소를 장식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외에 철제은상감적, 죽간자, 황개, 라, 편종, 대금, 방향 등의 악기에도 유소를 늘어뜨려 장식했다.
10) 예복용 : 조선시대 관복 중에 경축일에 입었던 조복이나 종묘제사 때 입던 백관의 제복에 부착된 후수는 청색 실로 망수를 맺고 그 끝에 후수술을 달았으며, 금관에는 딸기술을 양편에 달았다. 왕비의 적의에도 뒷면의 대대에 후수를 달았고, 후수 끝에는 술이 달렸다. 그리고 임금이나 왕비 또는 고관들만이 패용했던 패옥에도 밑에 매듭으로 망수를 맺고 술을 늘였다.
11) 궁중용 기물과 복식 : 견여(肩輿)라 하는 순(輴)과 반우거(返虞車)에는 낙영(落纓)을 만들어 사방의 처마에 드리웠고 대여(大轝)에는 삼색의 저사(紵絲)를 사용하여 낙영을 만들어 서로 섞어서 사면에 드리운 처마의 안에 매달았다.
12) 민간 의예식용 : 민간에서 새색시가 시집갈 때와 사대부집 부녀자가 나들이할 때 타는 가마를 위시하여 마지막 저승길에 타고 가는 상여에 대봉유소, 소봉유소, 앙장유소 등의 매듭과 술을 장식하였다. 시신을 넣는 관은 백포(白布)로 매듭을 묶었다.
세대를 이어가며 100년을 이어온 전통매듭의 역사 정봉섭 선생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기능보유자인 정봉섭 선생은 초대 매듭장 보유자이자 부친인 고 정연수 선생(1968년 보유자 인정)과 모친인 최은순 선생(1976년 보유자 인정)으로부터 매듭일을 배웠으며, 맏딸인 박선경 선생(매듭장 전수교육조교)까지 4대째 전통매듭을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예전에는 매듭장 중에 남성 매듭장이 많았다고 한다. 가마, 연(輦), 기(旗), 상여 등을 장식하는 대형 유소는 팔힘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어서 여성들이 하기 힘이 드는 이유였다. 매듭이 직업이었던 아버지에게 시집온 어머니는 아버지를 도와 복식에 사용된 소형 노리개, 허리띠, 주머니끈 등 장식성을 띠고 있는 매듭을 주로 하였다. 선생은 가업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매듭장으로서 갖추어야 할 은근과 끈기까지 그대로 물려받았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가느다란 실 가닥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일이니만큼 어지간한 꼼꼼함이 아니고서는 버텨내기 힘든 일이 매듭을 만드는 일이다.
“매듭이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자잘하게 도울 일이 많아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아버지께서 작업하실 때 옆에서 심부름을 도맡아 했죠. 매듭 공예를 배워야겠다 작정하고 배운 건 아닙니다. 곁에서 심부름하며 작업하시는 것을 가까이에서 보고 눈으로 익히고 심심할 때 혼자 흉내 내곤 했죠. 그러다 보니 언젠가 제가 매듭을 엮고 있더라고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재능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선생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부모의 뒤를 이어 매듭장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어머니는 정봉섭 선생에게 유독 엄격했다고 한다.
매듭은 오색물감으로 명주실을 염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매듭을 맺어 대송곳으로 질서 있게 죄어서 쓰임새에 따라 오색영롱하게 엮어가는 작업이 이어진다. 노리개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열흘 이상이 걸린다. 노리개에 달린 한 가닥의 술을 만드는 데만도 수백 차례 이상 쉬지 않고 실을 꼬아야 완성된다. 매듭은 그야말로 온전히 인내와 공력으로 탄생되는 산물인 셈이다.
“며칠을 매달려 완성된 작품도 있고, 몇 달을 공을 들여 만들어내는 것도 있어요. 작품 하나하나 애틋하고 정이 가죠. 그런데 이런 전통공예가 사람들에게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아서 서운하고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해요. 요즘 사람들은 매듭에 대한 관심도 적은 편이고, 수요도 많지 않은 편이죠.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전통 매듭을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
매듭의 전 분야를 섭렵한 정봉섭 선생은 정교한 기량이 돋보이는 빼어난 솜씨로 정평이 나 있지만 한 번 매듭을 잡으면 몇 시간이고 꼬박 앉아서 집중하는 일을 수십 년을 하다 보니 인대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손가락뼈에 주사를 맞아가며 일을 하기도 하고 허리가 안 좋아져 수술을 받기도 했다.
3대를 이어온 매듭의 계보는 순리대로 그 흐름을 이어가 정봉섭 선생의 딸인 박선경 선생이 가업을 이어가면서 4대째 이어져 오고 있다. 박선경 선생 역시 20년 넘게 매듭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깐깐한 어머니 앞에서는 종종 혼이 나곤 한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매사에 완벽을 기해왔던 어머니였기에 박선경 선생 역시 불평 없이 어머니의 훈육을 달게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전통공예를 하면서 생활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과 타협하다 보면 애써서 지켜온 전통의 맥을 놓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업지요. 그게 제가 전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구요.”
정봉섭 선생은 기능면에서도 매우 정교하고 기량과 솜씨가 탁월할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노리개에서부터 의식용 장엄구인 유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고 있으며, 특히 봉술(술 머리에 금실을 감아 글자문양을 표현하는 기능)감는 기능을 복원하여 전통매듭의 원형복원과 보존, 전승에 힘써온 것을 높이 평가 받아 200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작품
대삼작노리개 _ 길이 49cm가례나 혼례의 대표적인 예물로서 산호가지, 옥나비, 밀화 등 부부금슬이나 복 등을 염원하는 패물을 달아 사용했다. 이 대삼작노리개는 명주실을 삼색으로 염색한 후 합사하여 8사로 끈목을 짜고 도래매듭을 시작으로 생쪽, 양생쪽, 가지방석 매듭을 엮어 노리개의 윗부분을 완성한 뒤 끈술형태의 낙지발술을 달아 완성했다.
방장유소 _ 120×170 / 98cm방장은 추위나 바람을 막기 위해 방문이나 벽에 두르는 휘장이다. 안에 심을 댄 붉은색 비단에 박쥐문양과 연꽃문양의 금박을 장식하여 실용성과 장식미를 더하였다. 방장유소는 자주색 동다회로 끈목을 짜서 도래, 병아리, 나비, 국화매듭과 딸기술로 장식하였다.
비취 향갑 노리개 _ 6×39cm, 산호 향갑 노리개 _ 7×39cm, 밀화 향갑 노리개 _ 7×42cm
박쥐수노리개_37cm ㅣ비취나비삼작노리개_35cm ㅣ산호삼작노리개_36cm
모시방장유소(대)_132.5x200cm
선추노리개_81cm
제작도구 및 제작과정
제작도구
끈목을 짜고 술을 맞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도구가 필요하다.
1) 자애 : 자새라고도 한다. 타래로 된 명주실을 자구리에 옮겨 감을 때 명주실 타래를 걸쳐놓고 쓰는 도구이다.
2) 자구리 : 나무로 깎아 만든 것으로 명주실을 감아 놓는 도구. 얼레라고도 한다. 실을 감아 보관할 때 통풍이 잘된다.
3) 상사거리 : 끈목이나 술을 만들기 위해 실을 합사하거나 꼬는데 쓰는 도구
4) 비톳 : 두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실을 합사하거나 꼬을 때 상사거리에 걸쳐 놓고 쓰는 도구와 술을 비빌 때 쓰는 것으로 금속 비톳이 있다.
5) 토짝 : 끈목을 짤 때 실을 감아서 쓰는 실패와 같은 것
이외에 다회틀, 술틀, 술판, 돗바늘, 나무실패, 사장못 등이 사용된다.
제작과정
1) 염색 : 매듭은 명주실을 염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끈목을 짜려면 명주실이 끈틀에 앉혀지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데 먼저 생사를 비눗물에 알맞게 삶아 깨끗이 헹구어 견교질을 빼낸 후 그늘에서 말린다. 이 과정을 ‘정련(精練)’ 또는 ‘숙(熟)한다’고 한다. 정련한 한 비단실을 염색하는데 천연 염료로 잇꽃, 지치, 쪽, 꼭두서니, 치자, 칡, 명아주, 소방목, 대추나무, 주목, 계장초, 금전화, 팥, 배나무 껍질 등 여러 식물의 꽃이나 뿌리, 잎 등이 쓰인다.
2) 다회치기 : 염색을 하여 잘 마른 비단실 타래를 자애에 걸고 옮겨 감는다. 이것을 ‘자애질 한다’ 또는 ‘해사한다’고 한다. 해사가 끝나면 합사(合絲)를 한다. 합사한 실끝을 비톳의 코에 단단히 걸어 매고 손바닥으로 대바늘을 비벼 실을 꼬게 된다. 용도에 따라 4사치기, 8사치기, 12사치기로 나뉜다.
3) 매듭 맺기 : 매듭을 맺으려면 우선 일정한 길이의 끈목을 반으로 접어서 중심을 잡고 두 가닥의 끈을 순서대로 엮고 다시 차례대로 끈의 결을 바로 잡으며 질서 있게 조인다. 어떻게 잘 조여 주느냐에 따라 매듭의 아름다움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듭 맺기에 있어서 조이는 과정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고(옷고름이나 끈 따위를 서로 잡아맬 때 매듭이 풀리지 않게 하기 위해 한 가닥을 고리 모양으로 잡아 뺀 것)를 반듯하게 살려 전체적인 균형을 잘 맞춘다.
4) 술 만들기 : 봉술, 딸기술, 방울술, 방망이술, 낙지발술 등 술의 종류에 따라 만드는 과정이 다르다.
1) 매듭 재료와 도구 ㅣ2) 술감기 가지만들기 ㅣ3) 석씨매듭하기
4) 매듭하기 ㅣ5) 매듭하기 ㅣ6) 작업중인 정봉섭 선생
-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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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 서울 출생, 父 정연수 선생과 母 최은순 선생으로부터 매듭 전수
- 1977년 제2회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수상
- 1971년~1988년 제1회~제13회 전승공예대전 입선
- 1985년, 1987년 한중일 3국 국제매듭전 출품
- 2004년 무형문화재초대전 <매듭장 최은순家 매듭으로 잇는 4대 이야기> 전시
- 2005년 전통공예전 (워싱턴 한국문화원) 출품
- 200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기능보유자 인정
- 2009년 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 2009년 무형문화재 공개행사 ‘매듭장 정봉섭의 매듭장신구전’ 개최
- 2010년 무형문화재 공개행사 ‘천공을 만나다’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