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2 나는 진짜 그리스도인인가?

문성식 2011. 8. 29. 23:49

 

 2.나는 진짜 그리스도인인가?

A. W. 토저


2. 진짜는 솜사탕을 거부하고 가시 면류관 복음을 믿는다

생사의 문제

이 세상에는 극소수이지만 생사의 문제처럼 필수적인 일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맺는냐 하는 것은 바로 생사가 달린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구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으며, 우리의 공로와 상관없이 오직 그분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자동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세가지 아주 중요한 질문이 적용되어야 하고,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영생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 질문은, “객관적으로 제공된 구속이 어떻게 하면 주관적으로 받아들여진 구원이 되는가?”, 또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일이 어떻게 내 안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그리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세 가지이다. 이 중대한 질문에 대해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그리스도를 당신의 개인적인 구주로 받아들여라”, “그리스도를 영접하라”의 세 가지 답을 내 놓는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대답들은 사실 다 동일한 것이다.

그리스도 영접은 만병통치약?
우리는 영적으로 게으르다. 그래서 신앙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할 때 가장 쉬운 길을 택하려는 쪽으로 기울어지며, 그리하여 “그리스도 영접”을 만병통치 약처럼 사용하여 보편적으로 적용한다. 심지어 그들은 순간적인 마음의 충동에 의해서, 고통이나 손해없이, 평상시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수고 없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태도는 생사를 가르는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 비유를 들어보자. 만일 과거에 이스라엘 민족이 유월절의 피를 “받아들인(영접한)”후에 계속해서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겠다고 고집했다면, 탕자가 아버지의 용서를 “받아들인(영접한)” 후에 계속 먼 나라의 돼지들 틈에서 생활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려면 거기에 따르는 행동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뜻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험은 아주 독특한 경험으로서, 이 연합은 지적인 측면, 의지적인 측면, 그리고 감정적인 측면을 포괄한다. 지적인 면에서 신자는 예수님이 자신의 주시요, 그리스도라고 확신한다. 의지적인 면에서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결심한다.

그 결과 감정적인 면에서 그는 그리스도와의 교제에서 오는 큰 기쁨을 누린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주로 인정하는 데는 많은 혁명이 따른다. 진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일부분만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분 이외의 다른 것들을 철저히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라는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신앙은 그리스도의 친구들을 우리의 친구들로, 그리스도의 원수들을 우리의 원수들로, 그리스도의 방법들을 우리의 방법들로, 그리스도의 거부하시는 것을 우리가 거부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의 십자가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우리의 생명으로, 그리스도의 미래를 우리의 미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람을 안고 사는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은 바람을 받으며 세상을 거슬러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람이 불지 않는 산허리 양지 바른 곳을 기대할 수 없다. 교회를 성장시키고 비신자를 구원하겠다는 우리의 결의가 최근에 현대의 세일즈맨들이 사용하는 기법을 교회에 들여와 사용하는 죄를 범하게 한 것 같다.

 

 세일즈맨들은 상품의 좋은 점들만 이야기하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처럼 지도자들과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그분이 마음의 평안을 주시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고, 사업이 번창하게 해 주시고, 가정을 지켜 주시고, 언제나 행복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믿고 교회에 나온 사람에게 첫 찬바람(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생기는 시련이나 어려움)이 몰아치면 그들은 떨면서 카운슬러에게 찾아가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말해 줄 지를 모른다.


 

그리스도께서는 정말 “진리에 충실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복음서에 보면 그분은 진리의 전모를 제시하시고 사람들로 하여금 결단을 내리도록 하셨다. 그분은 사람들이 엄격한 진리에 너무나 부담을 느껴 돌아설 때, 따라가서 장미빛 약속을 제시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자신이 아담의 후손들에게 인기가 없을 것을 아셨다. 또한 그분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인기를 얻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셨다. 그분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얼굴에 몰아치는 바람을 역시 느낄 수 밖에 없다.

진짜 신앙이냐 가짜 신앙이냐
“솜사탕처럼 달콤한 복음”을 제시하면서 산허리 양지 바른 곳을 약속하는 것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속이는 것이다. 소위 “쌀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물질적 이익을 위해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복음을 제시할 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교회들에서 많은 “쌀 크리스천”들이 양산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약속하시는가? 그분은 죄사함, 내적 청결, 하나님과의 화평, 영생,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 유혹의 극복, 부활, 영화롭게 됨, 하나님과 영원히 거할 수 있는 처소들을 약속하신다. 이런 것들은 영적인 축복이지 물질적인 것들이 아니다.


진짜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믿기 때문에, 그 승리에 참여하기 위해서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않는다. 반면, 가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바람이 싫고, 산허리의 양지 바른 곳이 좋다”라는 확신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