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연중 제22주일(8/28)

문성식 2011. 8. 28. 06:50




연중 제22주일(8/28)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2주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하느님 마음에 들며 완전한 것인지’를 깨달으며 살라고 가르칩니다. 오늘날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는 올바른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세상을 올바로 바라보는 지혜와 올바른 삶을 사는 용기를 주시도록 청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 하소연한다. 예레미야의 기도는 예언자의 고통과 고뇌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 기도는 하느님을 원망하는 기도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 중에서도 하느님의 사람답게 고통을 받아들이고 참아 낼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청하는 기도이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잘 알아 선하고 하느님 마음에 들며 완전한 것을 좇으며 살라고 당부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려 하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막아선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호되게 꾸짖으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희생과 고통을 참아 내야 하는 길이다. 그 길을 외면하면 부활에 이르는 영광도 없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치욕 거리만 되었습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0,7-9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압도하시고 저보다 우세하시니 제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만 받습니다. 말할 때마다 저는 소리를 지르며 “폭력과 억압뿐이다!” 하고 외칩니다.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날마다 치욕과 비웃음 거리만 되었습니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의 몸을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2,1-2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1-27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어머니 모니카와 대화를 합니다. 어머니 모니카가 말합니다. “현세의 것들은 모두 인간의 영혼에 맞지 않아. 그러기에 사람이 그런 것을 더 많이 추구하면 할수록 더욱더 비참해지고 곤궁해지게 마련이야.” 어머니의 이 말에 아우구스티노가 반박합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만일 이 세상의 것들을 풍족히 소유한 데다 자기 욕심을 제어할 줄 알고 인생의 즐거움을 품위 있게 적당히 즐길 줄 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모니카가 대답합니다. “아니, 아니야! 이 세상 것은 절대로 영혼을 행복하게 할 수가 없어!” 어머니의 이 말에 아우구스티노가 매우 기뻐하며 외칩니다. “얼마나 멋진 대답인가! 그렇다.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사라져 버릴 것들을 초월해야 하며, 영원히 남을 것을, 설사 운명이 바뀌더라도 없어지지 않을 것을 추구해야 한다. 오직 하느님만이 그런 특질을 지니셨다. 따라서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레몬 크리스티아니, 『아들아, 내 치마폭에는 눈물과 기도가 담겨 있다』) 어머니와 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대화를 하고 있는지요? 우리도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대답처럼, ‘적당히 절제할 줄 알고 품위 있게 즐기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만으로는 우리 삶의 깊은 곳에 깃든 영혼까지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이지요. 영원한 것이 아니면 참된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죽음을 예고하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며 말리고 있습니다. 적당히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면서 이대로 살자는 것이지요.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하고 베드로를 모질게 나무라십니다. 베드로처럼 ‘적당한 것’, ‘좋은 게 좋은 것’에 머물고자 하는 생각들이 우리의 영적 성장에 걸림돌이 되지요. 영성 생활에서 정지된 상태란 없습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퇴보합니다.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는 사탄이 오늘도 우리 안에서 ‘적당히 살라.’고 속삭입니다.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아버지 뜻대로